단복 차림으로 저녁 8시까지 돌아다니기가 정말 쉽지 않더군요. 구두 신고 걸어다닐 때마다 충격이 몸에 전해져 와서 결국 당일 포스팅은 포기하고, 다른 글들을 참고해 오늘에서야 글을 업로드합니다.
이용했던 구간은 안양 ▶ 신창 (#1733) / 신창 ▶ 서울 (#1736) 이었으며,
운임은 포인트로 결제해서 단 한 푼도 쓰지 않았습니다.
신창역 회차선에서 누리로.
개인적으로 많은 기대를 하고 누리로를 탑승했습니다만, 실제로 본 누리로는 기대 이하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직 준비가 덜 된 채로 성급하게 영업운전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차량 스펙만큼은 일본에서 특급으로 굴러가는 JR 485계에 필적할 정도이고, 또 차량 제작사인 히타치 사에서도 나름대로 신경을 써서 차를 제작했는데... 조립과정이라든지, 아니면 영업준비 과정에서 사소한 문제들이 꽤나 발생했던 모양입니다.
안양역에 정차한 누리로 04편성. #1733 - #1736 반복.
우선 사진에서도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안내표지의 미비로 승객들이 호차번호대로 서 있다가 앞으로 이동해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었습니다. 열차가 도착할 때쯤 되어서야 안내방송이 나오더군요. 누리로 열차는 앞에 정차하니까 앞으로 가서 타라고. 다른 역에서도 사실 문제는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외에도 운영상 미숙한 점이 끊이질 않았습니다. 하행 #1733은 아예 서울역에서 5분 지연출발을 하기도 했고, 고속으로 제대로 주행했던 시간이 그리 길질 못했습니다. 그리고 상행 #1736은 정시에 출발했음에도 선행 수도권 전철 열차 때문에 열차 운전정리에 제대로(...) 걸려 버린데다, 가다가도 서정리 - 오산, 한강철교 위 등에서 멈춰 서는 등의 이유로 결국 15분 지연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차내검표도 제대로 시행하질 못하더군요. 영업운전 극초반이라 바빠서인 것은 이해하겠지만, #1733에서는 승무원이 PDA조차도 들고 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1736으로 반복할 때가 되어서야 PDA로 검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만, 이제서야 검표하냐는 혼잣말에 승무원의 표정이 싹 바뀌더군요.[각주:1]
개인적으로 이번 누리로 영업운전에서 특히나 아쉬움이 컸던 부분은 다음의 세 가지였습니다.
1. 왜 시운전 겸해서 운행을 하고 있었는가?
이번 누리로 영업운전은 프로모션의 성격을 가미한 것으로, 정식 영업운전시의 절반인 11회(하행 5회 / 상행 6회)를 운행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차량도 전부 들어오지 않은데다 시운전도 완전히 끝나지 않았으니, 이번엔 시험 성격으로 영업운전을 해 보고 7월부터 편도 11회로 왕복 22회를 제대로 운영하겠다...는 거죠.
그런데 차에 문제가 많더군요. 절연구간만 가면 불을 절반 정도 끄질 않나, (수도권 전철 전동차도 불을 안 끄고 타행운전[각주:2]을 시행하는 교류-교류 절연구간입니다) 방송안내장치 LCD에도 문제가 많았고... 말이죠-_-
오류도 많았고요-_-
오류가 자꾸 발생하니 재부팅까지 잦았습니다. #1733 안에서.
하행에서도, 반대편으로 올라오던 상행에서도 문제가 생겨서 차량 제작사 관계자들이 골치를 썩었습니다. 사진으로 올라온 이런 문제들 외에도 차량 문제 때문에 중간중간 차가 멈춰 서는 경우도 자주 목격할 수 있었고요. 대부분 신호대기를 핑계로 멈추어 섰으나, 실제로 차량 문제였으리라는 것은 스탭들이 많이 붙어서 운행하고 있는 것만 봐도 충분히 짐작할 만했습니다.
이럴 거였으면 차라리 당초 계획대로 7월 1일부터 모든 누리로 열차의 영업운전을 시작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뻔했습니다. 안정화도 덜 된 상태에서 무리한 운행은... 결국 자충수로 작용해 사람들에게 실망만을 안겨주게 되지요. 이럴 거였으면 이용자 대상 오픈 시운전이라도 실시해 보고 영업운전을 개시하지, 왜 굳이 차량도입도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막바로 영업운전을 개시했던 걸까요. 솔직히 지금 상태의 열차를 제 운임을 다 주고 타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2. 천안 이서에서 동선 혼합, 오승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건 상당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여객수입 감소와도 직결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지요. 누리로 열차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여기엔 넣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도 누리로를 수도권 전철로 착각하고 오승할 뻔한 일도 종종 일어났기 때문이지요.
천안 이서의 역들은 전부 일반 여객 동선과 전철 동선이 서로 섞이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역들은 전부 고상홈과 저상홈 간을 계단으로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지요. 천안만 해도 예전에는 내선(일반열차)와 외선(수도권 전철)을 구분하는 차단 펜스가 있었는데, 그것이 또 승객들의 민원으로 인해 사라졌습니다.
플랫폼 중간에 펜스가 둘러져 있지만, 계단 쪽은... 여객 구분 펜스가 없습니다.
지금같이 차내검표도 기동검표로 간소하게 하고, 또 출발역과 도착역에서 표 확인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여객동선의 혼합은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이로 인해 오승이 늘어나거나, 의도적인 무임승차 등이 늘어날 것은 뻔해 보입니다. 천안 ↔ 신창 간은 수도권 전철 표를 끊고/교통카드를 찍고 들어와서 누리로를 타고 이동해 버릴 수도 있는 거니까요.
사실 이에 대해서는 코레일 측에서도 인지하고 있고, 또 나름대로 대응하려 하는 듯하기도 합니다만, 여기에 대해 당장은 뚜렷한 답이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3. 대피선 운용, 이것이 한계인가?
이제까지 코레일에서 대피선 운용을 "왜 이 정도로밖에 못하냐" 하는 식의 글들이 동호인 사회에서 종종 나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문제가 사라지질 않고 계속되고 있는데, 이번에도 대피선 운용 문제가 이번 누리로 운영에서도 상당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솔직히 코레일 쪽의 대피선 운용을 보면 답답하기 서울역에 그지없습니다. 구로역에서도 운전취급 과정에서 효율성을 살리지 못해 신호대기로 종종 열차가 10여 분 가까이 발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고, 중앙선 구간에서도 무궁화호가 전철을 추월하지 못하거나, 추월하더라도 무궁화호 쪽에 불리한 결과를 가져와 종종 답답한 상황을 연출하는 광경이 많았습니다. 저도 언제 중앙선 무궁화호를 탔는데, 망우에서 수도권 전철 열차를 추월하는 과정에서 부본선을 타더군요. 에휴. -_-
첫 번째는 지금 올라온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누리로가 상행 본선을 이용하는 바람에 장거리 여객이 부본선을 이용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아예 가운데 선을 부본선이었다면 이런 비판은 가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요. 쩝.
수도권 전철이 정차하게 되는 하선 부분도 상선과 크게 사정이 다르진 않습니다. 역시 수도권 전철이 본선을 막고 있으면 장항선 하행 열차는 부본선을 통해 내려가야 합니다. 솔직히 누리로의 경우야 열차등급이 동일하기 때문에 그리 크게 할 말은 없겠다 싶지만, 수도권 전철[각주:3] 때문에 더 장거리를 운행하는 높은 등급의 여객열차가 본선을 타지 못하고 부본선을 타야 한다는 건 좀 에러일 겁니다.
수도권 전철이나 전기동차 등의 가/감속 성능이 좋다 보니 운영주체인 코레일은 거의 이 열차들을 본선으로 운행시키도록 조치해 놓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수도권 전철과 일반열차가 같이 지나는 많은 역들에서 수도권 전철의 여객을 취급하는 데 대부분 본선만 사용하고 있지요. (부본선에는 펜스를 쳐 놓는다든가 합니다) 그렇지만 상위 등급의 열차를 대피시키기 위해서 이러한 구조를 뜯어고치려면 그것도 또 돈 문제가 되는지라 코레일 측에서는 망설이는 듯합니다. 둘 다 쓰자니 열차가 어디로 어떻게 올지 모르니까 안전대책을 수립하기 뭐하기 때문일까요.
두 번째는 앞서 가는 하위 등급 열차를 제대로 추월하지 못한다는 것이었습니다. 16시 20분에 신창역을 발차하는 #1736의 경우 앞 열차가 4분 전에 출발하는 수도권 전철입니다. 그런데... 대피선이 있는 아산 권역의 마지막 역인 아산역까지도 수도권 전철 열차가 누리로를 위해 대피하지를 않더군요. 덕택에 누리로 열차가 대피선이 있는 천안역까지 거의 기어가다시피 해야 했습니다. 거기에 차량 문제로 인한 급정차 등의 일이 일어나다 보니... 정시에 출발했던 열차가 지연 15분을 기록하고 말았죠.
수도권 전철 열차를 제대로 추월하지 못하는 문제는 아무래도 신호관제 측의 문제와 여객사업본부-광역사업본부 간의 갈등이 큰 것 같습니다. 하계 무개념 다이아 사태 때도 이야기를 했습니다만, 열차시각표를 짤 때 광역과 여객의 시각표를 한데 모아서 짜는 것이 이 사태를 해소하는 데 큰 도움이 되리라는 판단입니다.
대피선 운용의 문제를 제외한다면, T-Money 시스템이 2004년 7월 버스개편 초기에 보여주었던 것처럼 이러한 문제들도 일시적인 시행착오 정도이리라고 믿어야 할 것 같습니다.
8월쯤에 Railro Project 2009를 진행하면서 누리로를 다시 타 볼 텐데, 그때쯤 되면 나름 안정화된 모습, 그리고 효율적인 열차 운용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개인적인 기대를 가져 봅니다.
바로 직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앞으로 충분히 기대를 걸어 볼 만한 열차이니까 말이죠.
사실 제가 잘못한 것이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직무유기를 지적하는데 그렇게 화를 내면 그것도 좀 곤란한 일이죠. [본문으로]